이야기

우리나라에 설탕이 처음 도입된 시기

모태연어 2025. 5. 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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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설탕은 사치품으로 처음 등장해 왕실과 상류층의 전유물이었고, 이후 개항과 함께 일반 대중에게도 퍼지며 우리의 식생활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나라 설탕 도입 시기


1. 설탕 이전의 단맛, 꿀과 조청의 시대

설탕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기 전까지 조선 사람들은 어떤 단맛을 즐겼을까요?
당연히 ‘꿀’과 ‘조청’이 대표적인 단맛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꿀은 귀한 약재로, 궁중 요리나 제례 음식에서 주로 사용되었고, 민간에서는 꿀보다 저렴한 조청이 널리 쓰였죠. 당시 조청은 쌀, 보리, 고구마 등을 엿기름으로 당화해 만든 것으로, 건강에 좋은 천연 감미료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조청은 제조과정이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어려웠습니다. 또 단맛의 강도도 지금 우리가 느끼는 설탕만큼 강하지 않았기에, 진짜 '달달함'에 대한 욕구는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죠. 조선 후기 사람들도 더 강한 단맛을 원했지만,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2. 설탕의 첫 등장: 조선 후기, 사치품의 탄생

우리나라에 설탕이 처음 들어온 시기는 정확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 후기 17세기 후반~18세기 초로 추정됩니다. 이때 중국과 일본을 통해 설탕이 처음 유입되었으며, 매우 소량만 거래되었습니다. 설탕은 일반인이 구할 수 없는 고급 수입품이었고, 오직 왕실과 고위 양반들만이 특별한 날에 아주 조금 사용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정조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던 음식 중 일부는 설탕을 사용해 맛을 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 당시 중국 사신단에게 설탕이 든 음식을 대접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는 설탕이 외교용 고급 식재료로도 쓰였음을 보여줍니다.

당시의 설탕은 ‘당(糖)’이라고 불렸으며, 조선 후기 의서나 요리서에 '서당(西糖)', '백당(白糖)' 등의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고작 몇 그램에 상당한 값어치를 했기 때문에, 이는 말 그대로 '사치품'이었고,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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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항과 산업화, 그리고 설탕의 대중화

설탕이 진짜 우리 생활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건 19세기 말 개항기 이후입니다. 일본을 비롯한 서양 열강과의 교역이 본격화되면서, 설탕은 더 이상 왕실의 전유물이 아닌, 부유한 민간 상류층 가정에서도 구할 수 있게 되었죠.
특히 인천항을 통해 수입된 일본산 설탕이 시장에 풀리면서 서서히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세기 초,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설탕 수입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때부터 설탕은 장아찌, 간장, 떡, 한과 등 다양한 음식에 사용되기 시작했죠. 1920~30년대에는 “설탕을 쓰는 것이 현대적인 요리법이다”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점점 일반 가정의 식탁에도 등장하게 됩니다.

게다가 1930년대 말부터는 국내에서 사탕수수를 활용한 설탕 가공업도 일부 시작되며, 수입 의존도를 조금씩 줄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설탕은 일본이나 대만 등지에서 수입되었습니다.


4. 광복 이후 설탕의 폭발적 소비, 그리고 현대의 당 문제

광복 이후, 특히 1960년대 산업화와 경제 성장과 함께 설탕 소비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설탕은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음료, 과자, 아이스크림, 빵 등 각종 가공식품에 빠짐없이 들어가기 시작했죠.

특히 1970~80년대에 등장한 음료 브랜드들과 대량생산되는 과자들은 설탕 소비를 일상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달콤한 건 맛있다"는 인식은 이 시기에 굳어졌고, 설탕은 ‘맛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게 된 겁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비만, 당뇨병, 고혈압 등의 만성 질환 증가라는 그늘도 생겨났습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성인 기준 하루 당 섭취량을 25g 이하로 권고하고 있지만, 한국인의 평균 당 섭취량은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최근에는 저당, 무설탕 제품들이 트렌드가 되면서, 설탕의 위상도 다시 변화하고 있습니다. 다이어트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설탕 줄이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죠.

즉, 처음에는 귀한 보약이었던 설탕이, 지금은 조심해야 할 성분으로 바뀐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우리의 식문화와 건강 인식에 따라 설탕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죠.


5. 설탕이 남긴 문화적 흔적들

설탕은 단순히 음식의 재료만은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는 설탕을 선물용으로 주고받기도 했고, 결혼식 혼수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백설탕 한 근’이 큰 의미를 가지던 시절이 있었던 거죠.

또한, 옛날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아이에게는 설탕물 대신 꿀을 주세요”라는 광고나, “설탕은 문명의 상징”이라는 문구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달콤함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고, 설탕은 그 욕망을 실현해준 매개체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달콤한 인생’, ‘설탕 같은 사랑’ 같은 표현이 여전히 쓰이는 걸 보면, 설탕은 여전히 정서적, 감성적인 상징으로서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죠.


결론: 설탕, 문화와 건강 사이의 줄타기

우리나라에 처음 설탕이 들어온 시점은 조선 후기라는 역사적 전환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처음엔 왕실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었지만, 점차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달콤함이 되었죠.

이제는 설탕을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기보다는, 얼마나 현명하게 섭취하고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건강한 식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설탕과의 공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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